|
‘아햏햏’의
비밀과 디지털 매니아 집단의
계보 : 2002-09-12 |
|
|
디시인사이드의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아햏햏에 대한 다양한 얘기들이 한동안
화제거리였다. 스스로를 ‘햏자’라 부르며 선문답과 비슷한
소통방식을 기반으로 독특하게 발전하고 있는 속칭 ‘폐인들의
메카’ 디시인사이드. 사실 아햏햏은 이곳
커뮤니티에서 파생된 다양한 신생어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디시인사이드의 커뮤니티는 이전의 어떤 곳과도 다른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를 평가하는데는 조심스러운
가정들과 분석이 필요하다.
오늘은 디시인사이드의
커뮤니티가 인터넷의 전통적인 커뮤니티 문화 흐름 속에서
갖는 의미를 짚어보고 왜 하필 그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
중에서 디시인사이드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1. 인과율과
카오스
우선 어려운 용어로
얘기를 시작하려는 이유는 독자분들을 헷갈리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필자의 글에 대한 탈출구를 미리 마련함에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분석은 당연히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율을
통해 가능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인터넷의 카오스적 속성에서
비롯된 우발적 커뮤니티일 수도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데는
인과율을 규명하는 것과 카오스적 관점으로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인과율은 과학이다. 그러나
카오스는 현상학에 가깝다. 인문학이 과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과율을 증명하는 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나, 이러한
믿음은 때때로 카오스 이론으로 부정되기도 한다.
인문과학은 과학성을 갖추기
위해 통계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카오스 이론은 통계학의
맹점을 통렬히 파고들었다. 계산의 현실적 편의성을 위해
제거한 사소한 변수 하나가 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카오스 이론은 결과를 예측하기 위한 모든 장치들의 무모함을
비웃는 것 같다.
아햏햏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단서가 너무 부족하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카오스적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카오스 이론의 명철함이
모든 현상을 무력하게 지켜봐야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던 가능하지 않던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미 다음의 조희제 기자가 시도한 아햏햏의
분석 “아햏햏, 마력을 품은 진실”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필자도 이러한 분석에 공감한다. 때문에
금번 필자의 칼럼은 조희제 기자의 견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다. 어떤 요인이 ‘아햏햏’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는지는 사람마다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이 더 옳을 지도 모르겠다.
비즈칼럼을 쓰는 필자의
고충은 이 현상을 인과율적으로 분석해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설득력이 있던 없던 하나의 시도로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2. 아햏햏의 비밀
아햏햏의 문화적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딴지일보의
커뮤니티 문화를 잠시 복습해야 한다. 딴지일보의 언어적 사용은
욕설과 비어의 일상화를 특징으로 한다. 이는 딴지일보의
컨텐츠에서 비롯된 학습효과로, 독자들은 이러한 언어 사용
방식을 통해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공감대를 이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딴지일보
게시판은 PC통신 시절부터 시작된 온라인 논객문화의 맥을
계승하는 커뮤니티였다는 것이다. 즉 딴지일보에 모여드는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문법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속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인문학적 배경의 네티즌들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인터넷의
전통적인 파워유저들이 아니다. 인터넷의 전통을 잇는 파워유저집단은
말의 유희보다는 컴퓨터와 네트웍 관련 기술과 정보 공유에
대한 열정을 공통 분모로 갖는 디지털 매니아 집단이었다.
한국의 인터넷 세대를 구분짓는 역사적 단계에서 논객들의
출현은 이런 디지털 매니아들의 기술적, 문화적 공헌에
힘입은 바 크다.
디시인사이드가 급부상하게
되었을 때 초기에 많은 이들이 이곳이 지리멸렬해진 딴지일보
게시판의 뒤를 잇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는 곧 잘못된
생각임이 드러났다. 이곳에서는 ‘말’은 원래의 문법적
의미를 벗어나 하나의 부호로 활용되는 이상스러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딴지일보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현상이다.
예를 들어 ‘아햏햏’나
‘햏자’ 등의 파행적 신조어 뿐만이 아니라 “고구마 하나만
사주세요”라던가 “음악하느라 배고파요. 100원만 주세요”라는
문법적으로 맞는 말조차도 그 자체의 의미가 아닌 하나의
부호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고구마를 사달라는 말이나
100원만 달라는 말은 앞서 쓴 글이 리플할 가치조차 없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딴지일보의 경우는 게시판을
‘조디컨퍼런스(주둥이회합)’, ‘쪽방’으로 표현하는
등 비어와 속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문법과 문맥을
중요시한다. 변형과 응용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문법과 문맥은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반면에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아햏햏, 10원만 주세요 등 그 자체의 의미나 문법은 무시된다.
다만 이것이 어떤 상황에서 쓰여질 수 있다는 기본 규칙만
있으면 언제든 사용 가능하다. 문법을 떠난 용어는 부호에
가깝다. 이는 분명 복잡한 언어 논리가
아니다. 대표적 부호인 숫자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그것이 어떨 경우에 쓰이기로 한다는 규약이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만든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디시인사이드의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인문학적 배경의 논객들이
아니라 사설 BBS시절부터 맥을 이어온 디지털 매니아 집단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곳에서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네티즌들의 직업적 구성을 보면, 상당부분 개발
분야의 인력들로 이뤄져 있음이 드러난다. 위에서 예를
든 용어 사용은 인문학적 배경의 네티즌들 사이에서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문법의 논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에 디시인사이드의 네티즌들은
문법 논리를 쉽게 벗어나 단어든 문장이든 부호화시킨다.
수학을 언어로 하는 이들에겐 문법보다 부호의 논리가 더
쉽다. 그리고 그들이 창조해낸 말들은 부호로 인식되기
때문에 서로간에 통용된다. 그리고 딴지일보에서는 창조된
언어들이 유행을 타며 명멸하지만,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규칙으로 ‘축적’된다. 이것이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를
대변하는 ‘아햏햏’의 비밀이다.
3. 왜 디시인사이드인가?
언어 논리로 점철된 분석가들이
디시인사이드의 커뮤니티를 어려워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관점이 틀리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곳은
기술적 배경을 가진 네티즌 뿐만이 아니라 인문적 배경을
가진 네티즌들이 참여하면서 복합적인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위에서 설명했듯이 디시인사이드의
커뮤니티는 인터넷의 초기부터 기술적, 문화적 인프라를
확충해온 디지털 매니아들의 계승임과 동시에 딴독투와
여러 담론 커뮤니티에서 이탈한 논객들이 최초로 이들과
결합한 커뮤니티라는 말이다.
이런 필자의 분석은 이들이
언어보다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들에겐 말보다는 이미지가
부호적 소통에 더 적합하다. 이런 스타일은 인터넷이
논객들의 무대로 변한 이후 와레즈로, 뉴스그룹으로, P2P로
내몰렸던 기술적 배경의 네티즌 문화가 상당 부분 이미지
커뮤니케이션을 해왔다는 역사적 근거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이런 소통구조는
최근에 와서야 일반 네티즌들과 공감을 할 수 있는 문화적
시기를 맞았다.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의 대중화 때문이다.
우선 그동안 서로간의 기술적
배경와 직업적 구분으로 커뮤니티가 분산되어 있던 디지털
매니아 집단들은 디지털 카메라의 가격이 대중화되면서
비로소 서로간의 공통분모를 찾게 된다.
이들간에는 그 동안 OS나
몇몇 특정 소프트웨어 외에는 이렇다 할 기술, 또는 이슈를
중심으로 합쳐질 계기가 없이 서로간에 분절된 소통을 해왔으나,
디지털 카메라라는 대중적인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비로소
이를 중심으로 유의미한 규모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디지털 카메라가
이미지를 생산하는 기술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정보
공유가 이미지 소통 문화로 넘어가는 구조는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오래 전부터 디지털 이미지를 조작하며 즐기던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쥐는 순간,
엄청난 문화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은
포토샵을 대중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때 디지털 매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변형된 이미지를 개발하고 이를 소통의 수단으로
삼는 문화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반 네티즌들 사이로
점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조작된 디지털
이미지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독특한 ‘아햏햏’ 커뮤니티에서
만남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디시인사이드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논객 커뮤니티와는 달리 대부분 IT 관련
직업을 가진 직장인 커뮤니티라는 점도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된 바 크다. 이들은 대중화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직업적으로 더 접근성이 용이한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
같은 기술들에 훨씬 더 가까운 사람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왜 이들이 디시인사이드에 모여들었가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문화적 환경과 ‘디지털 카메라’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보와 문화, 그리고 기술이라는 측면들이 모두
집결된 곳이 바로 디시인사이드였던 것이다.
4. 블로그 효과
디시인사이드나 베타뉴스 등의 리플 문화가
때로는 게시물 하나에 4천개의 리플이 달릴 정도로 위력적인
이유에는 이것이 클릭수와 로딩횟수를 획기적으로 줄인
블로그(웹로그라고도 한다) 방식이 큰 역할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설명하는
것보다는 정유진님의 글 “리플 문화가 만드는 새로운 컨텐츠 제작
방식”을 읽는 것이 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이 방식은 지금 인터넷
소규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의 활성화 시도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본 것으로, 이에 대한 성공사례를
확인하려면, 디시인사이드 외에도 얼리어댑터, 베타뉴스 등을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의 모든 행위는
기본적으로 클릭 효율성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클릭이라는
행위가 실패에 대한 비용지불이 너무 적은 탓에 요즘은
이 클릭 효율성이 쉽게 무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 부분은
컨텐츠와는 달리, 적어도 커뮤니티에서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커뮤니티의 클릭 효율성
측면에서 블로그 스타일 외에 더 뛰어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모든 성공한 커뮤니티가 블로그 타입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방식이 큰 기여를 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연구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5. 새로운 커뮤니티
문화의 발전을 위해
향후 커뮤니티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가에 대해 필자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금번 글을 쓰면서도 깊은 고민에
빠졌던 것이, 인터넷의 문화는 대단히 다양한데도 불구하고
뉴스의 유통 속성상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독특한 커뮤니티들만이
각광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아햏햏’는 대단히
폐쇄적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종의 반항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이것이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부호에 불과하다고 필자가 주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는 ‘그들만의 세상’과 더불어 ‘우리모두의 세상’이
존재하며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메일함을 열어보고
한 아이를 잊어버린 아버지의 비탄한 심정을 담은 스팸메일을
받았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매일 방문하는 커뮤니티 중에
한번쯤은 이런 이들을 돕기 위한 따스한 곳을 들러 볼 정도로
여유와 관심을 갖게 될까? 인터넷의 여러 가지 것들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우리들 모두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